공지 2020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신년사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2020-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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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신년사

 

넘어서기 2020

장벽을 넘고 경계를 허물어 한걸음 더 나아갑시다.

 

평화와 행복이 가득한 새해가 되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지난 해 우리는 부푼 꿈을 안고 한 해를 시작했습니다. 2017년에 시작한 촛불시민혁명, 2018년에 물꼬를 튼 한반도 대전환이 손에 잡히는 결실로 한 단락 맺어지기를 꿈꿨습니다. 100년 전 3.1운동에 나섰던 선조들과 임시정부가 꿈꿨던 나라다운 나라, 모두를 위한 나라를 향해 한걸음 크게 내딛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변화로 나아가는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정치개혁, 정부개혁, 사법개혁, 재벌개혁, 노동인권개혁, 성평등 개혁, 민생개혁 등 수많은 개혁이 국회와 정치권이라는 명목에 발이 묶였습니다. 특히 기득권 정당과 국회는 스스로를 개혁하기를 한사코 거부했습니다. 2018년 말 여야 원내대표가 함께 합의하여 국민 앞에 약속했던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선거법 개정은 정략과 기득권에 사로잡힌 제1야당의 약속 불이행으로 연중 난항을 겪어야 했습니다. 국회 내부의 폭력사태를 거치면서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내용으로 패스트 트랙에 올랐던 선거법 개정안은 최종 표결을 앞두고 집권여당의 기득권 앞에서 다시 한번 크게 후퇴하고 말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18세로의 선거연령 인하라는 정치개혁의 돌파구를 열었지만, 참된 정치개혁을 위해 넘어서야 할 낡고 거대한 장애물 또한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촛불혁명과 정권교체로도 미처 파헤치지 못한 국가기구들의 강고한 뿌리와도 마주했습니다. 국가정보원과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이름만 바꾼 기무사에서 과거 국민을 사찰하고 공격했던 인물과 조직들이 그대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검찰이 쥐고 흔드는 기소독점의 기득권의 위험도 목격했습니다. 궁지에 몰린 검찰개혁의 불씨를 되살리려는 시민들의 힘겨운 노력으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법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검찰 기소독점의 시대는 막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국민 위에 군림해온 국가 권력기구와 사법부를 민주적으로 개혁하는 일은 아직 해결하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지난 해 우리사회는 혐오 발언과 가짜뉴스의 범람으로 극심한 갈등을 겪었습니다. 5.18피해자들과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 성폭력의 피해자들을 향한 2차 3차 가해가 이어졌습니다. 기득권과 정략에 집착한 국회와 정치권은 민의를 수렴하여 사회갈등을 해소하는 대의기구의 기능을 멈추고, 혐오와 거짓주장의 발원지이자 확성기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보수언론과 더불어 기득권을 지키고 적폐를 정당화하기 위해 냉전시대의 낡은 이념을 소환하고 사실을 왜곡하며 극단적 혐오와 적대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우리사회가 극단적으로 갈라진 이유를 보수의 일탈에서만 찾을 수는 없습니다. 촛불정부를 자처한 문재인 정부와 개혁진보 진영이 이른바 ‘적폐세력’에게 적용해왔던 엄정한 잣대를 스스로에게 적용하는데 소홀했던 탓도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서초동에 모인 이들이 자발적인 시민이었듯이 광화문에 모인 이들 역시 자발적인 시민들이었습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현 정부가 약속했던 ‘공정한 과정’과 ‘정의로운 결과’에 회의를 품게 된 이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만 합니다.

 

우리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위기는 서초동에서도 광화문에서도 여전히 불려 지지 않는 이름들, 대변되지 않는 외침들 속에 있습니다. ‘조국 사태’를 계기로 새삼 실감하게 된 우리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은 ‘포용국가’라는 정부의 긍정적인 자평에도 불구하고 개선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다수 시민의 삶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우리사회의 소득불평등은 세계 최고 수준을 향해 치솟고 있고 촛불혁명 이후에도 반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재벌 총수의 전횡을 막고 갑을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입법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습니다.

 

지난해는 발전 산업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의 죽음으로 시작되었지만, 약속이행을 촉구하는 발전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거리농성은 새해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노노사정’ 합의로 10년 여 만에 전원복직을 약속받았던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은 지난 연말 ‘복직 유보’라는 청천병력의 일방적 통보를 받았습니다. 톨게이트 불법파견 노동자들은 대법원에서 승소판결을 받았음에도 도로공사로부터 정규직 채용을 거부당했고, 국제노동기구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전교조는 ‘촛불정부’ 아래서 여전히 ‘법외노조’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사회적 합의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개점휴업 상태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촛불혁명 이후 우리사회에는 새로운 물결이 일렁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또 다른 위기는 이 전환을 맞을 준비 부족에서 비롯됩니다.

 

촛불혁명을 계기로 타오르기 시작한 미투의 들불은 지난해에도 더욱 거세게 번져나갔습니다. 그 힘으로 낙태죄를 폐지하고 성폭력 사건에서 기념비가 될 만한 몇몇 판례도 이끌어냈지만, 김학의 사건, 장자연 사건 등 주된 권력형 범죄에는 여전히 솜방망이 수사와 면죄부 판결이라는 공식이 적용되었습니다. 피해자보다 가해자 위주로 고안된 성폭력 관련 법제도 여전하고, 직장 내 성차별과 임금격차도 공고하며, 여성혐오도 점점 격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환경 파괴와 기후 변화에 대한 사회의 경각심이 전에 없이 확대되고 에너지 전환과 동물권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 깊어졌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여전히 무분별한 환경 파괴를 정당화하는 법제와 정책의 개혁에 소극적이고, 이 관성은 총선을 앞둔 각종 개발 공약과 예산안으로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습니다. 환경을 지키려는 지역주민들의 외로운 싸움이 전국 곳곳에서 지속되고 있습니다.

 

3.1운동 100년을 맞아 정부와 시민사회가 한 목소리로 ‘이제는 평화’를 천명했지만, 평화로 가는 길은 안팎으로 커다란 도전을 겪고 있습니다.

 

하노이 북미회담의 불발 이후 북미관계도 남북관계도 진전을 멈추었습니다. 군사적 불신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갈수록 혹독해지는 대북제재가 북미간 협상의 진전을 점점 더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남북 정상이 합의했던 판문점 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의 이행도 유예되는 등 남북관계마저 얼어붙고 있습니다. ‘신한반도 시대’, ‘평화와 포용’을 천명했던 우리정부는 정작 군사적 불신을 완화하고 제재와 대결의 악순환을 넘어설 새로운 포용과 평화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간 관계가 악화되고 민간의 교류협력마저 각종 제재로 차단된 상태에서 2020년에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파국에 이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져가고 있습니다.

도전은 한일관계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로 궁지에 몰린 일본 우익 아베 정권은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집행을 문제삼아 무역보복을 감행했습니다. 시민들은 아베 정권의 과거사 부정과 무역보복에 맞서 촛불을 다시 들었고 거국적인 불매운동을 펼쳤습니다. 3.1운동에서도 그랬듯이, 시민들은 배타적 감정에 치우치는 것을 스스로 경계하고 평화를 위해 행동하는 양심적인 일본의 시민들과 연대했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의 항의행동에 힘입어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공언했던 정부는 한미일 군사협력의 강화를 기대하는 미국의 압력 앞에서 주춤거리며 후퇴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9년은 촛불혁명을 전진시키고 한반도의 평화를 일구는 길에서 우리가 직면한 도전과 넘어서야할 장애물이 얼마나 완강하고 거대한 것인지 실감하게 해주었습니다. 더불어 그 벽을 넘어서기 위해 다시금 촛불을 들고 언제고 거리에 나설 수 있는 시민의 의지와 힘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중앙정치무대만이 아니라 삶의 현장과 일상에서, 우리의 준비와 역량이 허락하는 만큼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차곡차곡 일어나는 것임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리고 작은 변화조차도 우리 스스로의 발목을 잡고 있는 낡은 기준과 잣대로부터 벗어나려는 용기를 발휘할 때만 실현될 수 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2020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보다 긴 호흡을 가지고 우리 스스로 설정한 한계와 경계를 넘어 시민과 함께 한걸음 더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다짐합니다.

 

선거법 개정에 머물지 않고 2020년 총선에서 기득권 정치의 옹벽을 넘어서서, 낡은 적폐세력을 심판하여 민의를 반영하는 새로운 정치의 싹을 틔우기 위해 행동하는 주권자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검찰을 비롯한 국가권력기관 기득권의 성역을 허물고 과거 국가폭력의 진상을 밝히고 국가기구의 적폐를 청산하여 주인과 일꾼을 바로 세우는 일에 함께 하겠습니다.

사람을 이윤추구의 도구로 갈아 넣고 소득과 기회의 불평등을 대물림하는 경제구조를 거부하고, 어느 누구도 배제당하지 않고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사회경제구조의 틀을 다시 짜는 일에 함께 하겠습니다.

성차별과 성폭력을 용인하는 가해자 중심의 기준과 제도를 피해자 중심으로 개혁하고, 여성이 시민으로서 실질적으로 동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앞당기는 일에 함께 하겠습니다.

혐오발언과 모독, 거짓뉴스와 왜곡, 근거 없는 편가르기와 차별에 맞서 사회적 약자와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바탕 위에서 다양성이 존중되는 진정한 사회 통합을 실현하는 일에 함께 하겠습니다.

기후 위기를 부르고 수많은 멸종과 참사를 야기하는 대량 파괴, 대량 소비의 쳇바퀴를 멈추고, 지속가능한 에너지, 지속가능한 문명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일에 함께 하겠습니다.

불신과 대결을 부르는 제재와 압박, 군사동맹에 의존하는 힘의 논리에서 벗어나 70년 지속된 한국전쟁을 반드시 끝내고 한반도 평화와 협력, 동아시아 공존을 향한 돌파구를 여는 일에 함께 하겠습니다.

넘어서기 2020, 우리는 일상과 정치의 경계. 제도권과 시민의 경계, 중앙과 지역, 남과 북, 국경 안팎의 경계를 허물고,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의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우리 삶으로부터 진정한 변화와 전환을 이루는 일에 함께 하겠습니다.

 

2020. 1. 9.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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