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 네트워크 확장][2023 신년하례회] 2023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신년사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2023-01-05
조회수 656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의 장기화로 유례없는 위기를 겪었던 지구촌 곳곳에, 무엇보다도 지금 이 시간까지 전쟁으로 인한 상처와 두려움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평화와 안전, 그리고 행복이 깃들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기원합니다.

 

계묘년, 영리하고 차분한 토끼해가 밝았습니다.

지난해 우리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살림’이라는 주제를 통해 코로나 시대의 위기로부터 공동체 구성원들의 삶을 회복해 나가자는 의미를 함께 새기며 새해를 맞이하였습니다. 아울러 그간 위축되었던 시민사회의 동력을 되살려 사회전환의 발판을 마련하자는 포부를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새해 첫 마음과 달리 공동체 회복의 과정에서 만났던 장애물은 생각보다 견고했고, 시민사회의 준비는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사회전환의 속도는 더디고 방향은 모호했습니다.

 

20대 대통령 선거는 사상 유례없는 정치혐오와 피로감만을 남긴 채 마무리되었습니다. 마땅히 국민의 삶 속으로 향해야 할 정치는 기득권 양당 구조를 공고히 유지하는 선거제도를 극복하지 못하고 정치퇴행으로 연결되었으며, 이런 과정에서 치루어진 6월 지방선거의 결과는 ‘지역소멸’이라는 위기적 화두에 단 한 발짝도 다가서지 못하였습니다.


2018년 ‘미투’ 운동을 계기로 보다 활발히 진행된,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희망적 예측과 사회적 실천의 과정은 대선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국민적 공감이 희박한 공약의 발표와 사회적 토론이 생략된 일방적 이행을 통해 좌초되고 있습니다. 이는 여성인권이 정치권력의 위기극복을 위한 볼모로 삼아지는 불쾌하고 불행한 선례를 남기며 진행되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를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은 차별과 혐오에 무감각한 정치적 유불리 앞에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 세계는 기후재앙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는 눈앞의 편익에 앞서 지구공동체와 미래세대의 안전을 고려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후시스템의 붕괴를 막을 수 있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우리는 여전히 성장과 개발이라는 구시대적 이윤추구에 발목을 잡혀 지구생명공동체를 지킬 수 있는 대전환의 바퀴를 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시민사회를 유지하고 지속가능하게 발전시키기 위한 정부의 정책이 부재한 상황에서 ‘시민단체 불법이익 전액 환수’는 여성가족부 폐지와 더불어, 윤석열 정부가 유독 후보시절의 공약 이행을 강조하고 있는 사안입니다.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 집회 및 시위 입체분석’이라는 이름으로 유출된 문건을 시작으로 ‘시민사회활성화와 공익활동 증진을 위한 대통령령’ 폐지, 시민사회단체 보조금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 등 시민사회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부정적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일련의 지침들은 오랜 기간 시민사회와 행정의 협력으로 만들어왔던 거버넌스 체계를 뿌리부터 흔들며 자율성과 독립성을 근간으로 하는 전국의 시민사회단체들에게 생존에 대한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한반도 평화의 영구적 안착이 위치해야 할 자리에는 평화를 위협하는 강대 강의 대결적 언어만 경쟁적, 반복적으로 나열되며 한반도의 위태로운 운명을 예고할 뿐 남과 북의 정부는 상생과 평화를 위한 대화의 창구를 마련하는 일에 무관심해 보여 국민들의 불안감은 커져가고 있습니다.


국민 모두가 당연하게 누려야 할 안전하게 일할 권리는, 택배노동자의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가 백지장보다 가볍게 무시되는 현장 앞에서, 유사한 사고로 충분한 경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20대 제빵 노동자의 죽음 앞에서, 존엄한 인간이기를 포기하면서까지 비좁은 철창 안으로 들어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의 목숨을 건 단식 앞에서 그대로 멈춰 서버렸습니다.

 

안전하지 못한 사회에 대한 우려를 넘어선 공포는 비단 위험한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우리 모두는 이 비현실적인 참사를 지켜보며 깊은 애도와 더불어 안전에 대한 위협이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집단적 트라우마를 경험하였습니다. 트라우마의 바탕에는 이 국가적 참사를 전후로 제 역할을 찾지 못하는 정치와 국민에 대한 책임 앞에 침묵과 외면으로 일관하는 행정이 존재합니다. 무엇보다도 여전히 진상규명을 외치고 있는 9년 전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우리사회에서 안전은 별반 다를 것 없이 사소했으며 책임은 피해자와 유가족의 몫인 상황을 다시금 지켜보는 것이 고통스럽고 또 분노스럽습니다.


2023년 시민사회단체 신년하례회의 주제어는 ‘단단하게’입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 모두에게 그 어느 때보다도 단단한 결심이 필요합니다.

 

노동현장을 포함한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일상에서 더이상 안전이 사소하게 여겨지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재차 정비하기 위한 일에 목소리를 모아야 합니다. 성역 없는 조사를 통하여,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지막을 알려주고 기억할 수 있도록, 10.29 이태원 참사의 원인과 과정을 정확히 밝혀내고 정치와 행정에 그 책임을 묻는 일은 응당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성가족부 폐지로 상징되는 여성인권의 후퇴를 막아내기 위해 전 시민사회가 힘과 지혜를 모아내야 합니다. 피해자들의 용기와 희생, 공동체적 아픔을 감내하며 큰 사회적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미투’ 운동의 종착점은 여성가족부 폐지가 아니라 국가 성평등 정책의 강화가 되어야 합니다.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에서 혐오와 배제 없이 안전하게 살고자 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제도화하는 일에 힘을 모아내야 합니다.

 

2023년도는 정전협정 체결 7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반백년을 넘기지 말자던 다짐 이후에도 20년이 더 지났습니다. 우리 모두가 피스메이커가 되어 평화를 사랑하는 전 세계 시민들과 함께 한반도의 종전과 평화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지구촌에서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없도록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합니다.


시민사회단체와 활동가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며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 정책의 변화를 일구어 왔습니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날선 비판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이 무너지는 현장을 지키는 일뿐만 아니라 행정과의 적극적인 협력을 통하여 시민권 옹호와 시민의 편익을 제도화하는 일에 기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간 시민사회단체들이 공동체 안에서 공기와 같은 역할을 해왔다는 믿음을 우리 스스로 굳건히 하여야 합니다. 시민사회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기반을 흔드는 일에 단호히 맞서는 것은 2023년 우리가 만들어내야 하는 희망의 기본적인 전제이기도 합니다.

 

2023 단단하게!

별주부전에서 토끼는 지혜를 발휘하여 간을 빼앗길 위기에서 벗어납니다. 그만큼 토끼는 영리하고 꾀를 잘 내는 지혜로운 동물로 그려지곤 합니다. 2023년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지혜로운 토끼의 모습으로 공동체의 위기를 현명하게 극복하고, 시민사회단체 간 단단한 연대를 바탕으로 시민들과 함께 대안적 세상을 만들어내는 일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도록 하겠습니다.

 



2023. 1. 5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0